나는 플라스틱 리빙박스에 식물과 지렁이와 등각류를 키우고 있다. 당연히 가로가 60cm정도 되는 큰 통에서 키우기 때문에 등각류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등각류를 키울 때 큰 통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 화분에 식물을 키우면서 그 위에 등각류를 넣어주는 것은 문제가 많을 것이다. 아무튼 키워보니까 장점이 많은 것 같아서 써보려고 한다.
나는 등각류를 키운다는 개념보다는 통 안에서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에 초점을 뒀기 때문에 그냥 구매한 등각류들을 한꺼번에 통에 집어넣었다. 레드글린트의 벌레샵이라는 곳에서 등각류를 구매했는데, 처음에는 한마리씩 파는 건줄 몰라서 딱 한마리씩만 구매했었다. (가격을 생각하면 그게 당연한 것인데 내가 너무 도둑놈 심보였던 것 같다. 그 다음에는 저렴한 종류들로 5마리씩 구매했다.)
아무튼 다행히도 서비스를 포함해 두마리씩 보내주셔서 등각류들이 너무 외롭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무조건 뭉쳐다니면서 백프로 번식을 한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그 등각류들이 살아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식물과 같이 키우다보니 땅을 함부로 파거나 할수가 없어서 등각류들을 아주 간혹 발견하는 정도일 뿐, 등각류들이 어디서 뭘 하는지 알기 어렵고 보기도 어렵다.
그런 전제를 깔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등각류들을 키우면서 느낀 장점은 곰팡이가 잘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곰팡이가 안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땅에 떨어진 죽은 잎 같은 것이나 땅 위의 흰색 곰팡이 같은 것을 등각류들이 먹는 것은 확실하다.
어항의 새우 같은 느낌이랄까? 등각류를 키우기 전에는 리빙박스 내부가 습해서 그런지 흙 위에 흰색 곰팡이 같은 것이 보였었는데 등각류를 넣어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흰색 곰팡이들은 다 사라졌다.
그 이후가 문제였다. 아무리 봐도 그것만으로는 그 등각류들이 생존하기에 어려울 것 같아서 무슨 먹이를 줘야 하나 그때부터 고민하게 됐다. (상당히 무책임하게 즉흥적으로 구매했던 것이다.)
사실 난 애초부터 등각류들에게 먹이를 줄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냥 살면 살고 죽으면 죽는다는 생각이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냥 간혹 당근을 얇게 잘라서 흙 위에 올려주거나 달걀 껍질을 잘게 부숴서 올려주는 정도만 해주고 있다. 그걸로 부족해서 다 굶어 죽는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난 내가 편하려고 등각류를 구매한 것이지. 등각류를 키우려고 리빙박스에 식물을 키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등각류들이 나름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ㅋㅋ) 리빙박스 안에 온갖 식물들을 심어놨기도 했고 식물의 키가 너무 크거나 내 마음에 안 들면 식물을 잘라서 흙 위에 멀칭하는 개념으로 올려놓기 때문에 풍족하지는 않아도 나름 먹을 것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드칩을 사서 가장자리에 적당히 쌓아줬다. 그 틈에 숨어서 지내기도 하고 배가 고프면 그거라도 먹겠지.)
개나 고양이 사료도 잘 먹는다고 하던데 나는 그래놀라 한조각이나 고양이 사료를 흙 위에 올려놔봤더니 별로 안 먹어서 그런지 금방 녹색 곰팡이가 피더라. 그것들을 다 치운 이후에는 그런 것은 일체 주지 않고 식물의 줄기나 잎 같으 것들만 흙 위에 올려둔다.
아무튼 확실히 편하긴 하다. 식물을 키우다보면 시들거나 죽거나 오래된 잎이나 꽃이나 그런 것들이 떨어지게 마련인데 그냥 놔두면 등각류들에게는 먹이가 생겨서 좋고 나는 치우지 않아도 돼서 좋다. (등각류가 없어도 분해가 되긴 하겠지만, 더 느릴 것이고 곰팡이가 필 것이고, 미세하게라도 냄새가 더 날 것이다.)
.
.
등각류를 키우는 또 하나의 장점은 보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식물 키우기만 하는 것보다 등각류도 같이 키우니까 훨씬 더 리빙박스를 관리하는게 재미있어졌다.
지금은 시큰둥해졌지만 초반에는 엄청나게 자주, 오랜시간 구경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분해생물이나 식물 키우기의 장점은 내가 신경을 쓰든 안 쓰든 지들끼리 알아서 잘 먹고 잘 큰다는 것이다. (매크로 같은 느낌?)
단점이라면 등각류를 풀어놓은 이후부터는 통 내부의 흙을 내 마음대로 푸거나 붓기가 어려워졌다. 잘못하면 등각류들이 흙 속에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종류별로 내가 느낀점에 대해서 간단히 적어보겠다. (이미지 출처는 레드글린트의 벌레샵이다.)
드워프 화이트
자가번식이 가능하다고 해서 많이 구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작아서 정말 구경하기가 어렵고 분해하는 능력도 크게 기대되지 않는다. 땅을 파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면 정말 땅 위에서는 보기 어려운 종이다.
양쥐며느리
사진상으로는 엄청 검은색인데 내가 받아서 본 종류는 회색이었다. 간혹 땅 위에서 돌아다니며 먹이를 먹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예쁘다면 예쁘고 징그럽다면 징그러운 느낌이다.
전에 리빙박스 안에 놨던 통 같은 것을 들어본적이 있었는데 그 밑에 이 양쥐며느리가 바글바글하게 모여있었다. (모여있어봤자 6마리였겠지만…) 느낌상 더 많아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좀 징그러웠다. 막 도망가는 놈도 있고 땅으로 파고 들어가는 놈도 있더라. (스타에서 저그의 버로우 기술처럼 진짜 버로우 한다는 느낌으로 파고들더라.)
20230701/
현재는 양쥐며느리가 점령을 한 것 같다. 아르마딜리디움 그라눌라툼을 포함한 다른 등각류는 거의 안 보인다.
낮에도 활발히 활동하게 됐고 색이 좀 달라졌다. 자두색?같은 등각류들이 대부분이다.
쿠바리스 무리나
크기가 드워프 화이트보다는 훨씬 크지만 그 이외의 다른 등각류들보다는 작은 편이어서 귀엽게 느껴진다. 구경하기 어려운 편이다.
이 놈들도 양쥐며느리처럼 같은 종들끼리 같이 모여서 사는 것 같더라. 리빙박스가 투명이니까 옆면으로 봤는데 이 애들끼리 모여있는 것을 본적이 있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다른 곳에 숨었는지 발견하기 어렵더라.)
아르마딜리디움 그라눌라툼
다른 등각류들은 주로 어두울 때 활동하는 것 같은데, 이 놈들은 진짜 미친 것처럼 낮에도 잘 싸돌아다닌다. 엄청 활발하고 보는 맛이 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실수로 얘들을 산거나 다름 없다. 되도록 저렴하고 수수한 종으로만 구하려고 했었는데, 이 애들은 사진처럼 등에 흰색이나 노란색의 점 같은 것들이 박혀있다.)
밝은 곳에서 먹이도 잘 먹고 최근에 짝짓기 하는 것도 본적이 있다. (미친…) 정확히는 몰라도 계속 혼자 싸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같은 종들끼리 뭉쳐서 살지는 않을 것 같다.
굴뚝양쥐며느리(오렌지)
초반에 샀던 종이라서 지금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는데, 이 애들도 위의 아르마딜리디움 그라눌라툼처럼 혼자서 엄청 잘 싸돌아다닌다. 그런데 먹이 활동이 그렇게 활발해보이지는 않았었다.
그냥 막 방황하고 다닌다거나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탈출하려는 느낌? 그래도 어쨌든 밝을 때도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구경할 수 있어서 마음에 들었던 종이다.
20230806/
계속 지켜보니 화분(통)이 넓어서 그런지 모든 종이 다 숫자도 늘어나고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등각류가 키우려고 심은 어린 잔디 같은 것을 먹기도 하더라.
니기기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